석굴암과 불국사
국보 제24호인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에 당시의 재상인 김대성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불국사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등산로로 3km, 신도로로는 9km거리에 있는 석굴암의 구조는 방형과 원형, 직선과 곡선,평면과 구면이 조화를 이루며 특히, 벽 주위에 조각된 38체는 어느 것 하나 걸작이 아닌 것이 없고 전체적인 조화를 통해 고도의 철학성과 과학적인 면모를 나타내고 있으며 중앙에는 백색 화강암으로된 여래좌상의 본존불이 동해를 굽어보고 있다. 여래좌상이 바라보는 시선은 문무왕 수중왕릉인 봉길리 앞 대왕암을 향한다. 수중왕을 수호하는 감은사터, 용이 된 문무왕을 보았다는 이견대가 대왕암 인근 해안에 있다. 불국사.석굴암은 1995년12월6일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종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나레이션 : 석굴암은 불교문화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작품으로 신앙심을 표현했다는 점 외에 과학적 측면까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유산이다.
석굴암은 360여개의 돌을 짜 맞추어 내부공간을 마련한 뒤 바깥부분을 흙으로 덮어 만든 인공석굴이다.
또한 석상 각 부분을 균등하게 나누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부실 안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본존불이다.
석굴암 본존불은 석가모니불이며 모든 악마의 방해와 유혹을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는 순간의 모습을 형상화 하고 있다.
또한 얼굴표정에서 손가락 하나까지의 완벽한 균형미는 지금 봐도 감탄이 나올 만큼 정교한 수학공식에 따른 설계로 인해 가능했다.
석굴암은 자연통풍과 채광, 온도와 습기조절까지 자체적으로 처리해낼 수 있는 뛰어난 자기 보존 능력을 지닌 건축물로 완성되었다.
석굴암 본존불이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완벽하게 표현했다면 불국사는 건축이라는 수단을 통해 불법의 세계를 현실세계로 드러내 보인 걸작이다.
특히 다보탑과 석가탑의 경우 신라뿐만 아니라 통일된 이후 고구려, 백제의 장인들이 신라로 넘어와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기록이 있어 삼국의 융합되고 통합된 문화의 정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실에 구현된 불교의 이상향인 불국사는 불교 교리로 이루어지는 불국 정토를 그대로 형상화 한 것이다. 먼저 한마음으로 부처에게로 간다는 뜻의 일주문을 지나면 사천왕이 지키는 문이 나오게 된다.
그 뒤로 대웅전은 현실세계를 담당하는 석가모니 부처가 자리하고 있고 극락전은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부처가 있는 곳이다.
두 건물을 놓고 볼 때 주의를 끄는 것은 극락전보다 대웅전을 더 크고 높게 지었다는 것이다.
이는 죽은 후보다 현실세계를 더 크고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잘 다듬은 다양한 형태의 석재로 화려하게 구성되어진 석조 기단부, 청운교, 백운교 등의 석조물은 구조미와 조형미를 동시에 표현한 당시 석조 건축 기술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신라시대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며 그 조형 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석굴암과 불국사에서 한국 문화의 원형을 이룬 신라시대의 황홀함을 확인해보자.
인터뷰 : 지병목 /소장(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온전하게 한 시대의 문화유산을 골고루 다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은 경주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경주에 오면 왕릉, 궁궐, 고분, 사찰 등 신라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문화유산을 다 확인할 수 있는 종합적이고 야외박물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겁니다.